프리드리히 니체
의미가 무너진 자리에서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지를 끝까지 물은 철학자.
초안 — 검토 전 원고입니다
니체의 질문은 단순하다. 우리가 기대 온 가치의 근거가 사라졌을 때, 그래도 이 삶을 원할 수 있는가.
신의 죽음 이후
『즐거운 학문』(1882) 125절에서 광인은 “신은 죽었다”1고 외친다. 니체에게 이것은 무신론의 선언이라기보다 진단이었다. 서구의 도덕과 진리를 떠받치던 가장 높은 가치가 더는 힘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, 그리고 사람들이 아직 그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.
이 공백이 니힐리즘2이다. 니체는 니힐리즘을 피하라고 하지 않았다. 통과하라고 했다.
긍정의 형식
같은 책 341절은 하나의 사고실험을 내놓는다. 지금의 삶이 조금도 다르지 않게 무한히 반복된다면, 그것을 저주하겠는가 축복하겠는가. 이 물음이 영원회귀3다.
나는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더 배우고 싶다. 그러면 나도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.
276절의 이 다짐을 니체는 아모르 파티,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불렀다. 체념과는 다르다.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견디는 데서 멈추지 않고, 그 일까지 원하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태도다.
더 읽기
니체의 글은 짧은 단장(斷章)이 많아 어디서부터 읽어도 된다. 입문으로는 스탠퍼드 철학 백과의 니체 항목4이 생애와 주요 개념을 균형 있게 정리한다.
- 1↩
광인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에서 신을 찾는다. 사람들이 비웃자 “우리가 신을 죽였다”고 말한 뒤, 자신이 너무 일찍 왔다고 덧붙인다. 사건은 이미 일어났지만 그 의미는 아직 사람들에게 도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.
- 2↩
니체는 니힐리즘을 “최고의 가치들이 스스로 가치를 잃는 것”으로 규정했다(유고, 1887년 무렵).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라기보다, 의미를 보증하던 근거가 무너진 상태를 가리킨다.
- 3영원회귀 지금의 삶이 조금도 다르지 않게 무한히 반복된다면 그것을 긍정할 수 있는가를 묻는 니체의 사고실험. 개념 사전에서 보기↩
- 4Friedrich Nietzsche —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plato.stanford.edu↩